2) 국민교육제도의 성격 : 보편성과 통일성
국민교육을 추구한 국가관리 교육제도의 기본성격은 보편성과 통일성이었다. 개별 국가의 교육은 보편적인 이념과 목적을 추구하는 동시에, 운영방식에 있어서 통일성을 지향하였다. 반톡(Bantock, 1973: 57-58)은 19세기 대중적 학교교육체제의 사상적 배경으로 18세기와 19세기에 강하게 대두한 통일성의 사상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19세기 보편주의 국민교육의 사상적 기반에 헤겔(Hegel)철학의 보편성과 통일성이 큰 영향을 주었으며, 생시몽(Saint Simon)의 "가르침의 통일성(uniformity of teaching)" 사상이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설명한다. 즉, 당시에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사회적 동질성이 절실히 요구되었으며, 이 동질성은 통일된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였다. 뒤르켐(Deukheim)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한 국가 구성원의 강한 결속을 지탱하는 "집합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을 교육을 통해 형성하고 확보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는 통일된 공교육체제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지배와 절대왕정이 붕괴된 위에 새로운 시민사회가 형성되던 당시에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통일된 규범의식과 사고방식과 지식체계가 강력히 요청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학교제도가 수립되었던 것이다. 학교는 표준화된 지식, 통일된 가치관과 감성을 주입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신체동작과 생리적 욕구까지도 "순종적"으로 만들었다(Foucault, 1975/2016: 230-238). 자연히 개인의 자유로운 학습활동을 보장하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교육은 억제되고 국가가 직접 운영하거나 강력하게 통제하는 획일적인 학교제도가 모든 교육활동을 지배하였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 대한 통일된 보편적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체제는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Bantock, 1973: 59). 19세기에 인류는 국가관리 교육체제로 모든 아동들에게 통일된 규범과 지식을 가르치는 초등교육 의무제를 수립하고, 20세기 들어서는 모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등교육 의무제도 화깁하였다. 현재의 학교 중심의 보편적 의무교육제도는 인류 역사에서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통일된 규범과 지식을 가르치는 보편적 학교제도는 사회학자 뒤르켐의 눈으로 보면 보편적 사회화를 제도화한 것이다. 보편적 사회화는 한 사회의 공통적 감성과 신념, 즉 집합의식을 사회 존속의 기본요건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공통성과 동질성을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보편적 학교제도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뒤르켐은 이러한 학교제도의 정당화가 국가주의적인 교육제도를 강화시켜 획일적인 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는 위험성은 예측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는 공통성과 동질성 및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학습의 자유와 교육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하였다.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의 권력집단이 국가를 장악하거나,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거나, 물질적 생산의 능률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산업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경우에 통일적 보편 교육제도는 불가피하게 정치와 경제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발견할 수 있고,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이를 목격할 수 있다.
사실상 오늘날은 거의 모든 국가가 산업국가(industrial state)이다. 즉, 정치와 경제의 복합체가 곧 국가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는 경제 이데올로기의 바탕 위에 국가가 형성되었다. 국가체의 이러한 성격은 20세기에 들어서 더욱 분명해졌으며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를바탕으로 삼고 있는 국가 또는 국가블록 사이에 전쟁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은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경제복합체의 종속적, 도구적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정치체제나 경제체제를 택한 국가든 학교교육만 놓고 보면 그 도구적 위치와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제도는 시험을 통하여 통일성을 더욱 강화한다. 시험은 각급 학교교육의 졸업이나 입학 시에 선발기능을 담당하고 있어서 통일된 지식과 규범의 학습 여부를 확인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만일 시험이 없다면 교육의 통일성과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시험을 통해 공통적이고 동질적인 교육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근대국가에서 시험은 전문 관료를 선발하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지적한 대로 학교제도는 사회적 지위분배의 기제로도 기능한다. 전근대 시대 신분제도하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던 이른바 혈통의 기능을 근대국가에서는 시험과 교육이 결합한 학력이 대신하고 있다. 대학졸업장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가 사회적 지위의 상하를 결정한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대학졸업장을 확보하려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졸업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물론 졸업과 입학에 필요한 우수한 시험 성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학교교육의 전 과정이 사회적 지위를 분배하는 기제로 기능하게 된다. 상급교육의 학력이 상위의 지위를 보장하는 증명인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학력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학력경쟁은 모든 사람을 경쟁에 몰아넣는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한 형태로 학력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교육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니지 않을 수 없다. 적지 않은 교육비를 스스로 부담하는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학교제도를 운영해도 취학률은 계속 높아진다. 사회적 지위를 위한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상급의 학력을 취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경쟁적으로 학교교육에 참여하기 때문에 통일적 보편교육은 국가가 의무제도로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유지된다. 획일적인 교육내용도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된다. 지위경쟁의 장으로 교육체제가 확립되면 교육의 자유와 학습의 자유는 더욱 축소된다. 지위획득을 위한 학력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과 학습은 현식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시험에 포함되지 않으면 학교도 학생도 해당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형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육체계, 즉 학교제도 내에서 '성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과 학습의 자유가 주어진다 해도 그것은 학교제도 내에서의 성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만이 강조된다. 입시준비를 위한 '과외'가 대표적인 것이다. 심지어 학교교육이 '비교육적'인 것이 된다 할지라도 학교제도로부터 쉽사리 벗어나는 결정을 하기 어렵다. 상급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시교육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바로 우리나라 교육에서 지난 수십 년간 보아왔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아무도 학교제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통일적 보편교육제도가 완벽하게 성립된 것이다. 지식과 규범의 통일을 위한 국민교육제도가 모든 교육과 학습 생활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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