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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29). 교육제도의 형성과 확대_국민교육제도의 등장과 그 특징-1-

나기log 2022. 6. 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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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대국가와 국민교육제도

 오늘날의 교육제도는 19세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국민교육제도의 결과물이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으로 절대군주제도가 무너지고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등장한 세속 정부는 교회가 가지고 있던 교육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이전의 농경사회와는 다른 노동력을 필요로 했는데 이 요구와 세속 정부의 이해관계까 결합하면서 학교 중심의 국민교육제도가 성립하게 된다.

 근대국가 이전에는 대체로 종교가 교육을 지배하였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유태교, 회교, 동양에서는 유교, 힌두교, 불교 등 종교들이 각기 세력권 내에서 이루어진 교육을 지배하였다. 사람들의 학습 생활은 각 종교의 지배를 받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신은 모든 가르침의 원천이었다. 모든 가르침의 권능은 오로지 각 종교의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임무는 신의 가르침을 사원의 예배나 경전을 통하여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의심과 비판은 파문의 사유로 충분했다. 스스로 배운다거나, 배울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 학습자 의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오로지 위로부터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숭배적 학습이 중시되었다. '교육권 신수설'의 지배시대라 하겠다.

 서양에서 종교가 교육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공교육사상보다 사교육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교육을 시킬지 말지는 부모의 결정 사항이었다. 귀족계끕이나 부유한 가정은 가정교사를 채용하여 자녀를 교육하였으나, 가난한 농민과 노동계급은 자녀들을 교육할 경제력이 없기도 하였지만 일을 시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신앙교육을 위하여 교회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빈민층 자녀들 일부에게나마 교육을 제공하였다. 가정의 사교육과 교회의 교육활동이 교육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지배력이 세속권력으로 대체되는 절대왕정이 등장하면서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16-17세기 무렵 유럽 절대왕정의 전제군주들은 종교, 문화, 교육 등을 국가권력의 지배하에 두고 통제하였다. 국가권력이 교육을 지배하였지만 국가가 교육을 실시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국민에게 교육기회를 주거나 주지 않는 결정, 어느 집단에게는 교육을 허용하고 어느 집단에는 허용하지 않거나 또는 방임하는 결정, 그리고 교육의 방향과 내용의 결정을 국가가 장악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교육에 대한] 조장정책, 억압정책, 방임정책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민중교육에 대한 하나의 국가정책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렇게 민중의 교육, 특히 학교교육이 중앙집권적인 국가권력의 정책으로 취급된 점이 이 단계의 현저한 특징이다(우메네 사토루, 1990: 215).

 

 유럽에서 18-19세기 등장한 근대국가들은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새로운 교육제도를 수립하였다.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의 전야에 라 샬로테(La Chaloatais)가 출판한 '국가교육론'은 국민교육 사상의 형성과 그 제도적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역설하였다. 

 나는 감히 불란서[프랑스]를 위하여, 오직 국가에만 의존하는 교육체제를 확립할 것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교육은 본질상 국가의 일이라는 데 있으며, 모든 국가는 각각 그 구성원을 가르칠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으며, 한마디로 말하여 국가의 어린이는 국가의 구성원에 의하여 양육되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Boyd, 1964/2008: 372).

 

 반면에 프랑스 혁명 당시 입법의회 의원, 국민공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공교육에 관한 기획안'을 제안하기도 한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는 국민들의 다양한 재능과 목표를 존중하는 학습자 중심의 자유롭고 유연한 공교육체계를 주장했다. 그는 공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했다.

 교육은 [공권력이] 이런저런 견해를 선전하거나 어떤 의도에 유용한 원리를 정신 속에 주입하려는 목표를 지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실들을 가르치고, 그들 앞에서 그들의 권리나 행복과 관련된 논의를 벌이고, 그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또록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Condorcet, 1791/2019: 60).

 

 두 사람의 교육론은 아주 대조적이다. 샬로테는 국가의 필요와 목적을 위하여 국가가 학교를 설립하여 국민을 가르치거나 모든 교육활동을 공권력이 통제하고 지배하는 국가 주도의 '국민교육론'을 주장한 반면, 콩도르세는 개인의 필요와 목적을 위하여 각자에게 적합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들을 국가와 지방이 운영하는 '공교육론'을 주장했다. 전자는 국가의 필요에 무게를 둔 반면 후자는 개인에 무게를 둔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는 계몽주의의 시대정신 바탕 위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국민의 지식 수준과 도덕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보편적 교육을 실현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교육의 주체와 목적에 대한 궁극적 입장은 대립되었지만,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 과 교육을 전체 국민에게로 확대하려는 열망에는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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