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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20). 경쟁하는 이론들_갈등론적 교육이론-6-

나기log 2022. 6. 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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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재생산 이론의 계승 

 학교교육의 재생산 기능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알튀세르(Althusser, 1971)도 정리하는데, 그는 국가의 중요성을 강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는 국가의 중요성을 강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전통적 마르크스 이론에서 상부구조의 한 부분 정도로 취급했던 국가를 '국가 장치(state apparatus)' 라는 개념을 확대하였다. 알튀세르는 국가 장치를 '억압적 국가 장치(repressive state apparatus, RSA)'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ideological state apparatus, ISA)'로 나눈다. 억압적 국가 장치는 마르크스가 '국가'라고 할 때 주로 의미하던 것을 사법제도, 군대, 경찰, 정부 등으로 구성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종교, 교육, 가족, 법률, 정치, 노동조합, 매스커뮤니케이션(신문, 라이도, 텔레비전 등), 문화(문학, 예술, 스포츠 등)로 구성되는 광범위한 것으로 규범과 가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가 존속, 즉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억압적 국가 장치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작동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가 작동하여야 무리 없이 원만하게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한 부분이지만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의미취학에 기초한 국민교육 제도야말로 가장 강력한 재생산 장치인 것이다. 이 장치를 통하여 지배 이데올로기가 국민들에게 전파되고 내면화된다. 

 영국의 교육사회학자 윌리스(Willis, 1977)는 학교가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충실하게 재생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보울즈와 진티스 및 알튀세르가 상정하듯이 재생산이 무리 없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의 아이들이 아버지와 같은 노동직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것은 보울즈와 진티스 및 알튀세르가 설명한 것처럼, 구조적 상황과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계급의 문화와는 이질적인 학교문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여 스스로 노동자의 길을 택한다고 설명한다. 윌리스는 학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행하는 경제구조 및 사회구조의 재생산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학교는 저항과 대항의 문화가 존재하는 일종의 열린 공간이라는 점을 동시에 강조한다. '저항이론(resistance theory)'으로 불리는 윌리스의 설명체계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사회 재생산이론을 수용하면서도, 학교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적 공간임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윌리스의 설명체계를 보편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음도 지적되고 있다(김기석, 1987).

 애플(Michael Apple)도 마르크스주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에 학교교육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깊이 있게 파헤쳤다. 그는 학교의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학교가 재생산의 고리임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았지만, 교사들이 각성하고 사회 각 부문의 민주적 좌파들과 연대함으로써 교육의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급 환원주의나 경제 투쟁 우선 논리를 경계하며, 학교와 교사의 자율적 공간에 주목한다. 교사의 각성과 학교교육의 민주적 실천이 개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Apple, 1979, 1982, 1999). 그렇지만 교육을 굥제구조의 재생산 논의로부터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접에 따라, 또 학력에 따라 임금의 격차가 존재하고, 누가 고소득의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데 가족의 경제사회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애플은 학교의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를 문화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문화정치학과 학교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 관심을 넓혀 비판이론의 교육설명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Apple, Oliver & Nenk, 1996)

 카노이(Martin Carnoy)는 교육의 국제적 관계를 제국주의(imperialism)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국각 간의 갈등 현상이 교육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분석하였다. 그는 '문화적 제국주의로서의 교육(Education as Cultural Imperialism, 1974)'에서 식민지의 교육이 식민지 국민의 의식을 어떻게 왜곡시켜 지배자들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었는지 서술하고 있다. 식민통치자들은 학교교육을 통하여 지배의 바탕을 바련하고 이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카노이에 따르면,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으로는 독립하였으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교육이 문화적 종속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으 ㅣ논지는 이렇다. 이제까지 교육학자, 사회과학자, 역사학자들은 제3세계에서의 서양교육의 역할을 잘못 해석하였다. 서양의 학교교육은 제3세계 국가들을 해방시키기는 커녕 제국주의적 지배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그것은 한 나라의 지배계급이 다른 나라의 국민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통치한다는 제국주의의 목표와 일치한다. 제국주의 세력은 학교교육을 통하여 식민지 주민을 식민통치에 적합하도록 훈련시킨다(1974: 3). ...... 구식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모두 사라지고 지난 세기의 대제국들도 모두 무너졌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교육제도는 독립 후에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교육과정, 언어,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교사들까지도 식민지 시대의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전 식민지와 식민통치국 사이에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식민지시대보다 더 강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1974:17).

 

 카노이의 이러한 분석은,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는 '제국주의로 왜곡된 문화'라고 역설하는 사이드(Said, 1978)의 주장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이제깢 ㅣ마르크스와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의 교육에 관한 이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결정론(economic determinism)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교육이 경제구조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결정된다고 역설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행위의 설명에 있어서도 개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사회적 조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다(Moprrow & Torres, 1995: 141-174 참조). 물론 그람시와 같은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윌리스, 애플 등은 경제적 결정론을 배격하고 학교의 상대적 자율성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들도 교육의 재생산기능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구조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성과도 상당 수준 올리기는 하였으나, 행위자의 능력, 즉 사회구성원의 기존 문화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학습능력과 그에 기초한 사회변혁 가능성에 대하여는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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