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울즈와 진티스의 재생산 이론
보울즈와 진티스는 미국의 학교교육은 앞에서 파슨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 것도, 인재를 공정하게 선별하여 사회에 배치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적합한 태도와 가치관을 가르치고 기존의 불평등한 계층구조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킨다고 비판한다. 미국의 학교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와 함께, 그리고 자본주의의 결과로 발전하였으므로, 자본주의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ㅁ ㅗ순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학교는 경제구조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보울즈와 진티스에 따르면 학교는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가치관과 성격적 특성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킨다. 그러나 이 교육은 대상에 따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단순 노동자로 일하게 될 사람들에게는 윗사람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고 시간을 잘 지키고 기계적 작업방식에 순응하도록 가르치는 반면, 회사의 관리자난 경영자로 일할 사람들에게는 독립적인 사고력 및 작업능력, 여러 선택 가능성 가운데 현명하게 선택하기, 외적 규율보다는 내면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보울즈와 진티스는 이러한 차이를 고등학교의 취업반과 대학진학반 및 직업훈련 중심의 초급대학과 명문대학교 사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과정 내용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의 전반적 교육분위기에도 그러한 차이가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 집단은 순종적이고 능률적인 노동자로 가르치고, 다른 집단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지도자로 기른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울즈와 진티스는 이렇듯 뚜렷이 다른 종류의 교육에 접근할 수있는 기회도 불공평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학교는 결과적으로 계층불평등을 존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울즈와 진티스는 학교가 인재를 정확하게 선별하는 장치라고 규정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교육관은 허구라고 단호히 배격한다. 학교가 선발을 능력주의에 터하고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재능이 많고 더 노력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맏드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질서의 정당화를 위하여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는 기존 질서의 정당화 장치인 셈이다. 학교에서 직업계와 인문계로 학생들을 나누는 것, 또는 취업반과 진학반을 가르는 것, 그리고 대학입학을 결정하는 일련의 교육선발은 이른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능지수(IQ), 적성, 성적 등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실상은 학생의 계층배경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능력주의 교육관은 학교교육에서의 개인적 성공, 즉 좋은 성적을 받고 일류대학을 진학하는 것은 계층배경의 영향하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 그들은 미국의 대학교육이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졸업과 사회계층간의 상관관계가 변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한다. 학교교육은 사회의 불평등구조, 즉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재생산하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가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은 학교교육과 경제적 생산체제가 서로 상응(correspondence)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보울즈와 진티스의 이론을 상응이론(correspondence theory)이라 부른다. 국내에서는 '대응이론'이라고도 번역한다. '대응'이 비친화적 관계에 있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면, '상응'은 친화적 관계에 있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보울즈와 진티스가 인식한 경제적 생산체제와 학교의 관계는 비친화적이기보다는 친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응이론'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상응한다는 말은 교육자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와 학교교육을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가 구조적으로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즉, 상응이론은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교육이 이루어지는 '형식'을 중요하게 본다. 교육과 경제구조 간의 상응관계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통해 유지되며, ㅎ,ㄱ교에서는 공식적 교육과정보다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Bowles & Gintis, 1976: 11-12).
학교의 사회적 관계와 생산작업장의 사회적 관계 간의 상응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 첫째,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내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듯 학생들도 자기가 배워야 할 교육과정에 대하여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둘째, 교육은 노동과 마찬가지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노동은 임금을 얻는 수단이고, 교육은 졸업장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셋째, 생산현장이 잘게 나누어진 분업 체계로 조직되듯이, 학교도 계열을 구분하고 지식을 과목별로 잘게 나눈다. 넷째, 생산현장에 여러 직급별 단계가 있듯이 학교도 학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 학교교육의 이러한 상응은 자본주의 사회가 존속하는 한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울즈와 진티스는 주장한다. 학교교육을 아무리 개혁해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은 사회의 구조르 그대로 반영하며, 학교의 독자적 기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가 계속된는 한, 학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학교의 개혁은 무의미하고, 사회적 진보를 위해서는 근원적 사회 개혁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보울즈와 진티스는 교육의 경제구조 재생산 과정으로 상응이론을 주장하였는데, 그들은 상응의 원리를 너무 단순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설명한 점에 대하여는 스느로 비판하고 있다(진티스, 보울즈, 1991: 66-67). 교육과 사회의 관계를 경제구조에만 한정시켜 설명한 점, 그리고 양자 사이에 아무 모순 없이 매끄러운 상호관계가 이루어지느 것처럼 과장한 점을 잘못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총체적 사회와 교육 사이에는 모순이 개재해 있음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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