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교육사회학자들이 교육내용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은 강고한 계급구조를 유지해 온 나라로서, 전통적으로 정예주의교육을 지향해 왔으며, 상류문화가 교육을 지배해 왔다. 이에 비하면 미국의 교육은 일찍부터 대중교육제도를 발전시켰으며, 교육내용도 특별히 상류문화를 고집하지 않았다. 영국의 상류문화 지향적 교육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불어닥친 대중교육의 물결과 불가피하게 부딪히게 된 것이다. 상류문화 지향의 교육내용을 계층의 상하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가르치는 것을 정당화하든지, 아니면 교육과정을 새로 만드는 일이 불가피해졌다. 어찌 되었든 교육내용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버거와 루크만(Berger & Luckman)의 지식사회학에 관한 설득력 있는 저서(1966)가 출판되었고, 사회학에 슈츠(Alfred Schutz)의 현상학적 방법론이 도입되고, 가핑클(Harold Garfinkel, 1967) 등의 민족방법론(ethnomethodology)이 널리 소개되어 교육내용과 내부현상에 관한 연구열이 한층 고조되었다. 영국은 이미 만하임(Karl Mannheim)이 남겨 놓은 지식사회학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사회적으로 형성된 지식체계'로 보려는 신교육사회학자 또는 교육과정사회학자들을 고무하고도 남았다. 더욱이 민속연구방법론 및 현상학(phenomenology)적 방법론과 상징적 상호작영(symbolic interaction)이론의 등장은 학교의 내부현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방법론상의 어려움을 크게 덜어 주었다. 그리하여 교육과정사회학의 주창자들은 종래의 거시사회학(macro-sociology)의 관점에서 벗어나 미시사회학(micro-sociology)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과학철학자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1970)도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신교육사회학 또는 교육과정사회학의 연구주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크게 나누어 두 가지이다. 교육과정과 교사·학생 간 상호작용이다. 교육과정을 보는 이들의 관점은 한마디로 지식의 사회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학교의 교육내용은 사회적을 ㅗ결정된 문화전수의 한 방편이기 때문에 그것은 보편적인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사회적·정치적 산물이라는 것이다(Eggleston, 1977).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도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교육적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학생과 교과지식에 대한 교사의 범주 구분 방식도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어서, 중간계층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하함으로써 낮은 계층 학생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Keddie, 1971). 교육과정사회학으 교육사회학의 연구범위를 넓혀준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육 외의 사회구조적 문제에만 편중되어 있던 교육사회학의 연구관심을 교육 내부의 문제로 끌어들인 공적이 크다. 그러나 교육과정사회학의 여러 약점도 지적되었다(Blackledge & Hunt, 1985: 290-315; Karabel & Halsey, 1977: 52-61). 첫째, 교육과정사회학자들은 학교지식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socially constructed)'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지식의 사회적 성격을 지적한 것까지는 좋으나, 지식을 마치 누구나 자기 멋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문제가 있다. 지식이 사회적으로 형성된다고 해서 학교 교육과정이 엄격한 학문적 검토과정을 거치지 않고 언제나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지식이 특정 시대에 특정 집단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 지식이 그 시대와 그 집단의 이익에만 봉사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특정 집단, 예컨대 자본가 계급 또는 중류 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 있을 수는 있으나 모든 지식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육과정사회학자들은 이것을 구별하지 않고 마치 학교가 가르치는 모든 지식이 특정 계급을 위한 지식인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사회학은 자칫하면 극단적 상대주의적 지식관으로 치달을 위험을 안고 있다. 즉, "지식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집단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주장도 지식이 될 수 있고, 역으로 어느 것도 보편적 지식은 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신교육사회학에 속하는 고버트가 교육과정사회학에서 "지식은 철저히 상대화되고, 절대적 지식의 가능성은 부정된다"(Gorbutt, 1972: 7)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이 분야 학자들의 일부라도 극단적인 상대주의적 지식관에 빠져 있다는 의심을 받을만하다.
둘째 약점은 교사가 학생들을 '우등생'과 '열등생', '모범생'과 '문제학생'등으로 범주화하는 것이 교육적 요인에 의하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주장과 관련된 것이다. 교사의 학생 범주화가 상당한 정도로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학생들의 학업성취와 장래의 진로를 전적으로 결정한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은 연구가 밝혀주고 있듯이 학생들은 그들 나름대로 대응전략과 방법을 구사하며, 수동적으로 끌려만 가지 않는다.
셋째 약점은 교육과정사회학자들이 교육과정, 교사, 학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좋으나, 사회구조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학교의 내부에 초점을 둠으로써 학교 및 교사와 학생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의 문제에 적절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위험이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을 비롯한 학교 내부의 문제에 대한 연구와 이론적 논의는 학교 교육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다만 미시적 관점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구조에 대한 거시적 관점과 연결시킨다면 그 성과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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