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다. 더불어 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떠나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수교육의 역사는 장애에 대한 인간과 사회의 역사이다. 역사발전 과정에는 반드시 사회의식이나 사상들이 개입되고 반영된다. 특수교육의 역사 또한 사회의식과 사상의 변화에 조응하면서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1) 고대/중세사회에서의 장애아동
18세기 계몽사상의 일환으로 특수교육의 성립이 있기까지 장애아동들은 교육의 장에서 오랜동안 소외되어 왔다. 근대 특수교육이라는 공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장애아동들의 역사는 한마디로 소외의 역사였다. 유기/방임/추방/살해/조롱이라는 용어들이 함의하듯 장애인들은 인격적/사회적 소외 속에서 굴종과 차별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서양 문명의 원류인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장애인들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유기와 살해, 추방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도시공동체 사회였던 그리스는 개인에 우선하는 국가 우위의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는 가족의 소유라기보다는 국가의 자산이라고 보았다. 스파르타(Sparta)는 Lycurgus 법전에 의거하여 태어난 아이는 국가로부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공인 받아야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사회였다. 따라서 태어난 아이가 장애자이거나 신체 허약아면 바로 타이게투스(Tygetus)산에 버리거나 에우로테스(Eurotes)강에 던져 익사시켰다. 아테네 역시 Solon법에 의거 신체 허약한 아이는 살해하거나 진흙 항아리 같은 곳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는 이른바 Potting이라는 유기 풍습이 성행하였다. 카르타고(Cartage)에서는 태양 숭배의 일환으로 맹아동을 타오르는 불길에 화형 시키기도 하였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마사회에서도 장애아동은 유기/살해/매매의 대상이었다. 가족공동체 사회였던 고대 로마는 12동판법에 의거하여 아들이나 노예, 아내에 대한 가부장의 절대적인 법적 권리를 인정한 사회였다. 즉, 태어난 아이들을 살해/추방/매매 또는 심지어 불구자로 만들어도 법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런 관계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의 절대 권리에 의해서 생명과 인권을 유린당한 이른바 유아살해(infanticide)의 최우선적 대상이었다.
고대사회에서의 유아살해 풍습이 만연한 까닭은 무엇보다 아이들을 종족 보존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개개인의 가치나 존엄성보다는 아동들이 앞으로 생산이나 부족 보존에 기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생존가치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①인구수와 자원간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②기근/질병/기타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부모들의 자기 방어 수단 ③먼저 태어난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Kadushin, 1980, pp, 37-38)
이러한 유아살해 풍습은 통일 로마제국의 성립 후 중세를 거쳐 18세기까지 부분적으로 지속되는 현상이지만, 가부장권이 약화되면서 조금씩 변화된 양상을 보여왔다. 즉, 장애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살해되거나 유기 되는 대상에서 벗어나 점차 사회적/경제적 가치에 의해 생존의 잣대가 놓이게 되었다. 통일 로마제국에서는 많은 맹소년들이 거지로 훈련되거나 노를 젓는 노예로 팔려나가기도 하였으며, 맹소녀는 매춘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French, 1932). 정신지체아 또한 노예로 매매되거나 거지행각, 혹은 집안의 즐거움과 유희를 제공하는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장애아동들을 거래하는 특수시장이 형성되기로 하였다(Winzer, 1993, pp. 13-15)
그런데 이처럼 장애아동들이 멸시와 조롱 및 살해와 유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까닭은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가족과 집단의 생존을 위한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작용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이와 더불어 동시대를 이끈 철학적 사상 또한 이런 현상에 동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리스 사상의 주요한 특색의 하나인 심미주의는 장애인들을 외모로 판단함으로써 부정적 장애인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잘못된 장애관은 서양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그리고 중세 교부철학의 기반을 놓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같은 대철학자들마저도 언어선천설이나 언어신수설에 입각, 농아의 경우 그 교육 불가능을 주장함으로써, 이들의 주장들은 중세 후반에까지 장애아동에 대한 부정적 태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언어선천설은 기원전 5세기경 자연철학자 헤라크레이토스 이래 인간은 이성과 생각하는 도구로써 언어를 갖고 있으며, 이 언어습득은 선천적이라는 입장을 취한 인식론이다. 따라서 농아인은 이성이 없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교육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런 왜곡된 언어선천설은 이후 그리스도 사상과 결합되면서 농아인은 신의 말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므로 신앙에 결정적인 결함이 된다는 언어신수설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같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해로 말미암아 13세기 17세기 초에 걸쳐 유럽 전역에 걸쳐 일어났던 마녀사냥 시기에 수많은 장애인이 악마가 씬마녀로 간주되어 희생되는 결과를 빚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세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그리스도 사상의 전파로 자선과 보호사상이 배태되고 교회나 수도원과 같은 자선시설에 장애아동들이 수용/보호된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보편적인 공적 구제제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는 청각장애인을 5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단순 벙어리에게 문자 지식을 습득하게 하거나 글을 깨우치게 하는 등 어떤 법적 제한도 가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할 때 중세시대에는 가족 계급에 따라서는 농아들에게 교육적 혜택이 부분적이나마 허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교육사 연구회 편, 1974, pp. 80~82)
이상과 같이 서양 고대에서 중세 말에 이르기까지 미신적 주술의식이나 심미주의 사상 및 왜곡된 종교관 그리고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장애와 장애아동에 대한 편견과 미신을 배태하였고, 이것이 결국 차별적 인간관으로 발전하여 근세 초기까지 하나의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하였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본 게시물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장애아동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읽게 된 책 '(특수교육의 이해', 교육과학사)에서 발췌한 내용의 일부이며 추후 특수교육의 이해와 종류, 교육방법에 대해 추가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을 시 메시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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