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주도자, 학습의 주도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누가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며 교육상황을 누가 통제해야 하느냐는 질문과 잇닿아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국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지식과 가치체계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평생에 걸쳐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을 수도 있고, 이와 대조적으로 국가보다는 개인이 원하고 필요한 내용을 언제나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을 수도 있다. 또한, 각 지역공동체나 기능공동체들이 가르치고 배울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학습사회의 건설이 평생교육사상의 본질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김신일, 2020: 281-298).
결론부터 말하면, 평생교육의 사상적 방향은 교육에 대한 국가통제를 줄이고 지역공동체와 사회 및 경제단체들의 자율적 교육을 확대하여 민주적 공동체가 각 개인의 주체적 학습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국민들의 다양한 학습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교육을 개방적으로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이 평생에 걸쳐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평생교육론자들의 소망이다. 이 소망은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5.31교육개혁의 슬로건인 '열린교육사회 평생학습사회'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었다. 5.31교육개혁의 결과로 만들어진 평생교육법은 평생학습의 기회 확장에 크게 기여해왔다. 국제적으로는 유엔이 주도하는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2030)의 교육 분야 계획이 담긴 2015년 인천 세계교육장관회의의 결의문에 이 소망이 담겨있다. 유엔 산하의 유네스코는 2015년 '교육2030: 포용적이고 공평한 교육과 모두를 위한 평생학습을 향하여(Education 2030: Towards Inclusive and Equitable Education and Lifelong Learning for All)'라는 인천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의 교육정책은 평생교육사상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1990년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의 평생직업기술교육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통적으로 계몽주의적 공교육을 근간으로 삼던 나라들이 국가통제를 줄이고 자율화를 늘리자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평생교육에 참여하는 학습자의 자비 부담을 확대하는 쪽으로 교육정책을 바꾼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학습을 직접 관리하던 종전의 방식에서 벗어났지만 평생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평생 동안 스스로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국민을 강제하는 정책을 도입하였다. 개인이 원하는 학습을 자유롭게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원하는 내용을 국민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정책노선을 강화했다(김신일, 1999). 이러한 정책노선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교육기관 간의 경쟁을 부추기면서 학습자의 선택 폭을 넓힌다는 특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시장원리에 토대를 둔 이러한 정책은 학습자인 국민들을 '마케팅의 ㅐ상으로 삼게 되어 진정한 학습과 주체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평생교육의 확대 기조 속에서 여전히 교육과 학습의 주체에 관한 논의는 치열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교육을 실시하는 자의 입장에서 교육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거나 특정 학습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하는 자의 입장에서 선택하고 요구할 수 있게 만들자는 주장은 여전히 새로운 것이다. 국가통제의 통일적 교육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가르치는 자가 교육의 주도권을 쥐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점으로부터, 배우는 자가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가치롭게 여기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평생교육의 사상적 지향이다. 가르치는 쪽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쥐는 교육으로부터, 배우는 쪽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요구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다. 이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평생교육이 확장될수록 더 커질 것이다. 근세 이후의 인류역사는 사회학자 파슨스의 표현을 빌리면 세속화의 기록이다(Parsons, 1971). 종교적 절대권위가 무너지며 신앙의 자유가 등장하였고, 경제적으로는 국부의 군주 소유가 무너지며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발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충성과 복종의 의무만 강요받던 백성들이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였다. 지난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이 모든 현상으 주권의 하향이동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절대적 권위자가 독점하고 있던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통치권이 일반국민에게 옮겨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화'는 매우 그럴듯한 표현이다.
이와 같은 세속화의 역사적 물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속화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부문이 교육이다. 교육은 아직도 베푸는 쪽에 주권이 있지, 받는 쪽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실시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학습자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직은 아니다. 오늘날의 공교육체제, 특히 국민교육제도는 세속화와는 거리가 먼 교육관의 제도적 표현이다. 학교제도하에서 학생이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을 결정할 수 없다. 그들은 교육의 대상이지 교육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의 필요와 희망을 교육에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 결정은 학교가 하는 것이지 학생이 하지 않는다. 국민교육체제에서 주권은 아직 학습자에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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